[J네트워크] 대통령 후보들의 사과
“미국 국민은 생명을 잃은 것에 대해, 여러 해에 걸쳐 여러분이 받은 고통에 대해 사죄합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지만 통탄할 정도로 부당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 공식 사과가 나오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1997년 5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사과문을 읽었다. 1932년부터 흑인 남성을 대상으로 이뤄진 매독 연구 때문이었다. 매독 감염을 알리지 않은 채 정부 연구는 40년간 지속됐다. 내부 고발자의 폭로로 사건은 수면 위로 드러났지만, 미국 정부는 사과하지 않았는데, 클린턴 대에 이르러 생존자와 유족에 대한 공식 사과가 이뤄졌다. 대선을 앞두고 사과가 쏟아지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는 말을 한 뒤, 인터넷에 올라온 사과와 반려견 사진은 그저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바통을 넘겨받은 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였다. 지난달 22일 “우리 국민의 아픈 마음을 또 그 어려움을 더 예민하게, 더 신속하게 책임지지 못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리도록 하겠다”며 큰절까지 했다. 이틀 뒤, 조카의 살인사건 변론에 대해 “일가 중 1인이 데이트 폭력 중범죄를 저질렀는데 가족들이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이 못됐다”면서 또 사과했다. 그는 지난 2일에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우리 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고 비판받는 문제의 근원 중 하나”라며 사과를 내놨다. 잠잠해지나 싶었더니 또다시 윤 후보 측이 사과했다. 아내 김건희씨의 ‘허위 이력’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김씨는 지난 15일 “사실관계 여부를 떠나 국민께서 불편함과 피로감을 느낄 수 있어 사과드린다”고 했다. 곧이어 윤 후보가 “과거에 미흡하게 처신한 게 있다면 국민께 송구한 마음을 갖는 게 맞다”고 했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사과인데 사과 같지 않다. 진정성 때문이다. 클린턴이 “할 수 있는 일은 사과밖에 없다”며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머리를 숙인 것과는 결이 다르다. 미국 언어학자 에드윈 L 바티스텔라는 ‘공개 사과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해명과 사과는 언어로 잘못의 의미를 바꾼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과는 과거의 자신을 비난하고 부정하는 데 비해, 해명은 잘못에 대한 행위자의 죄를 부인한다.” 김현예 / 한국 중앙일보 페어런츠팀장J네트워크 대통령 후보 대통령 후보들 공식 사과 공개 사과